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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烽火烟 野云万里风沙望不断
血未干 魂断沙场醉卧旌旗翻
报国难 英雄三千皆亦然

 

피어오르는 봉화의 연기 만 리의 모래처럼 끊임없고
마르지 않는 피, 죽음의 전쟁터에는 뒤집힌 깃발이 나뒹굴어
삼천 명의 영웅이 있어도 각자 품은 뜻이 다르니 보국은 어려워라

 

(百恋歌 中 / 林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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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주화각 홍화지부의 서각주 랑시휼. 그는 혜가 세상에 나와 가장 오래 맺은 인연이자 오랫동안 신뢰하고 있는 사람이다. 처음, 주막에서 급사로 일하고 있던 혜의 자질을 알아보고 화각에서 일하도록 권유한 것이 그였으며 이후부터도 웬만한 전달과 지령의 수행은 둘 사이의 독대로 이루어졌으니, 단순히 직장 상사라기보다도 은인이요 의지하는 마음이 없잖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처음 황궁에서의 소란이 있었던 때도 원망보다는 그저 의문과 의아함이었다. 어째서 이 사건들에 대해 전혀 귀띔해 주지 않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것인지, 설마 그러리라고는 생각지 않으나 몰랐다면 대체 이것들을 꾸민 배후가 누구이기에 화각의 눈과 귀를 피해 갈 수 있었던 것일지. 그래서 다음날 그는 옷을 갈아입는 핑계로 한시바삐 달려가다 각주님을 찾았던 것인데.

 

  이보다 더 얼마나 중하고 바쁜 일인지 그 분은 여태껏 자리를 비우고 있지 않은가.

  대륙의 유일한 제국과 그 제국의 지배를 거부하는 유일한 한 나라. 그 양국이 마침내 마주치는 회담이니 그 경중을 따지자면 반대 저울에 올릴 것을 찾기 드물다 생각했다.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식은 차를 혜는 연신 들이켰다. 이 회담을 기회이자 술수로 쓰려는 이들이 있으리라 짐작하지 못했고 조금이나마 그 내막을 들여다보게 되자 모든 것들이, 지금 자신들이 함정에 빠져 오락가락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자 상황들이, 머릿속에서 하나의 갈래로 정리는 되기 시작했다. 납득도.

 

  영광 얻으려는 나라의 안위만큼 마지막으로 중하고 바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금월인지 홍화인지 모르지만 어디 다른 곳에서 제가 믿는 그 사람은 또 이보다도 필요한 일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다면, 지금 상황을 알게 된 것까지도 완전히 우연은 아니리라 싶었다. 홍화의 대표로 대리하여 가라 할 때, 그랬으니 이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힘 다해 해내야 하겠구나 하고 여겨졌다. 지금의 일은 이제껏 해 왔던 그 어떤 것과도 달라 한두 사람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함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런 이들에 거스르는 것이요 말하자면 국가의 안녕이고 대의를 위함이었다.

 

  그 생각을 하자 가슴이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달음박질쳤다. 대의의며 만인을 위한 일, 그래서 마땅히 해야 하게 되는 일. 그런 것을 품을 수 있기를 일생 얼마나 바라 왔던가. 그토록 찾아도 갖지 못하고 가벼운 사람으로, 무게 없는 사람으로. 깊은 사정에는 눈과 귀를 닫고 타인의 손에 기꺼이 놀아나며 생글생글 웃음치고 지냈다. 하지만 그는 실은 낙락송이 되고 싶었다. 여름 풀빛이 푸르러 가장 좋아하는 그는 버들가지였으나 본래.

 

  푸른 대나무는 군자의 절개요, 푸른 소나무는 대장부의 마음이라.

 

  고아하고 긍지 높은 모든 이들을 동경하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홍화는 저가 나고 자란 땅이기도 하였다. 제국 수도의 대로에 당당히 서 있는 누각, 그 뒤에 딸린 제 작은, ―"한 몸 마음놓고 편히 머물 수 있는 곳이 집이지요."―집에는 안뜰에 산수유나무가 있고 나서는 길목에는 수양벚꽃이 있어 봄마다 분홍 꽃잎의 비가 내리다 그대로 멈춘 것처럼 흐드러진 채 나부꼈었다. 한여름을 위해 지은 하얀 도포를 걸쳐입고서 길고 더운 여름밤에 못내 잠이 오지 않으면 비파 현이라도 뜯어 볼까 하던 그런 때였다.

 

  애착하지 않을 수 없었고, 걱정하지 않을 리 없었으니. 아래는 크게 자란 나무도 없이 막막하게 풀밭이요, 위로는 잠 이루지 말라는 것처럼 평원의 하늘 구름이 덮는다. 이제껏 개인적인 일뿐이었던 나날들을 오래 전인 것처럼 하고 눈앞에는 낯선 전쟁의 창검이 부딪치고 있다.

 

  멀리 왔다. 이제껏 이만큼이나 홍화를 멀리 떠나 본 적도 없었다. 마시고 있는 공기가 변했고 마음이 변했으니 사람 또한 아니 변하였다 못 하겠지. 내다봐지지 않고 어찌될까 모르는 미래가 오랜만이었다. 꺾을 가지 없어 빈 손을 움켜쥐어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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