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누구의 의지로 홍화를 지지하고 있습니까?"
그것, 말인데. 줄곧 좀 생각을 하고 있던 점이었다. 그에게 홍화는 나고 자란 땅의 제국, 그 이상이나 이하의 의미가 아니었다. 그저 당연히 있는 세계였기에 특별히 지지해야 한다거나 반해야 한다는 생각을 않고 있었달까. 충성은 관료들의 일이고 보국은 영웅들의 일이 아닌지요. 이 사람 소연은 그저, 굳이 그 앞에 무언가를 붙여야 한다면 홍화의 민초일 뿐인데. 태평성대를 누려 왕의 이름조차 모르는 민초 말입니다. 어릴 적의 꿈이나 쫓던 별은 어느새, 그가 달려온 삶의 길에서는 자취를 찾을 수 없었고 그래서 그는 바람을 접어두고 민초가 되었다. 그냥 봉급 생활자일 뿐인데요. 으쓱하면서 혜는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랬었는데, 하필 이번에 저의 각주님이 저를 두 나라의 회담 자리에 대리로 보내고 말았다. 실력과 능력으로 선정하는 인사라 과연 그런가. 홍화의 대표단과 금월의 사절단은 그 구성이나 나이, 배경들이 모두 제각각이었는데 그러면서도 각자가 바라는 바나 생각하는 바를 곧게 가지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그는 한주화각 서각주님 대리였지만, 그럼에도 원래 모습으로 가서 원래의 이름을 소개했고 일상에서 그러하듯 연이라고 불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은 저희 각주님의 대리로 왔으니 그분의 뜻을 회담에 전하는 것이 저의 할 일이겠지요."
그런데 각주님이 잊으신 중요한 게 있다는 걸 방금 알았습니다. 그분의 뜻을 말씀 안 해 주고 가셨습니다.
"그런데요. 남의 마음까지도 흉내내어서 저의 것인 양 하는 데에 이 사람 능통합니다만 이번에는 요 앞에 이어졌던 소란...이랄까. 전쟁들로. 일이 좀 이상하게 되어 버린 것이지요. 저도 원래 생각과는 좀 다른 일들을 하게 되었고 말입니다."
잠시 멈추고 그를 바라본다. 금월이 홍화를 누르면, 이라고요?
"어찌되었건 저도 홍화의 사람입니다. 비장하게 이어받을 가문의 충성이나 대업 같은 것은 없어도 제 안뜰의 산수유나무와 길목의 수양벚꽃, 마음 쉬는 집이랑 골목길의 식당이 제게 소중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니 각주님의 뜻이 곧 제 뜻이기도 하겠군요. 이 나라가 평안하고, 영광되기를 바라는."
대충 때려맞췄습니다만 이 정도면 맞겠지요, 각주님? 저 회담을 마무리하고 돌아가서 휴가나 길게 내어 버릴 테니 말입니다.
"이 나라가 평안하고, 영광되기를 바라는."
남자는 그 말이 마쳐지기가 무섭게 하하, 하고 헛웃음 비슷한 것을 흘린다.
예. 그 말을 서각주라는 자가 했었는데. 다만 그 나라가 조금, 달랐을 뿐으로.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헛웃음이 새치기를 하고 나와 겨우 막는다.
아직, 아직 이 문단의 차례는 아니다.
조금 더 이 자가 생각하게 하자.
그 한주화각 홍화지부 서각주라는 자 말인데.
남자와 영 관련이 없는 자도 아니었다.
기간은 혜보다 짧았을지언정 결코 그 깊이가 얕은 것은 아니다.
여왕이 마악 즉위할 때였던가.
서각주라는 자가 접촉을 취해왔다.
내각의 붕괴, 새 여왕과 황제의 즉위.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각주 대리라는 담연 혜.
아아...그러십니까. 잘 알겠습니다.
그것이 여왕 보좌라는 야타의 대답이었다.
"그냥 봉급 생활자란 말씀이십니까."
보통 사람이라는 것이 그렇다.
사실 남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편하다.
스스로 생각해야하는 것을 알지만 그러고나면 찾아오는 허망함, 이질감, 또는 자기혐오.
금월 여왕 보좌관 야타는 그런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대 이름 앞에 붙은 대리라는 두 글자만 떼어버려도 휘청일 사람인 걸.
그래서 물은 것이다.
누구의 의지로? 그것은 담연 혜라는 이름을 띄고 있습니까?
앞서 들은 대답이 만족스러웠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혜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알려준 사람이 있으니. 고마워해야겠다, 하고.
"허나 그 각주라는 자에게서 직접 의견을 전달받으신 적은 있습니까? 정보국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습니까. 발 딛은 곳이 산이라면 눈길은 바다를 향하고 있는 것."
그래요, 서각주라고 안뜰의 산수유나무와 길목의 수양벚꽃, 마음 쉬는 집과 골목길의 식당이 소중하다고 느끼지 않지는 않았을 겁니다.
제 손으로 가꾼 것이 가장 아름다운 법인데.
그도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겠습니까...
그는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여타의 것과는 다른 모양새였다.
겉으로는 여전히 말짱하고 유한 곡선을 만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혜는 그의 표정에 놀라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