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타고 바다까지 가는 것이 큰 길이라면, 그 산길을 바라보고 안전히 딛어 나갈 눈들이 필요한 법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그것이고요. (그러하다. 지난 팔 년간 그가 각주의 충실한 수하로서 별다른 고민도 갈등도 없이 편안히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그는 언제고 무언가의 목적에 대한 부품이나 장기말로서 기능하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아무리 너희가 큰 뜻을 품어도 그 부릴 말이 없으면 어찌할 것이냐, 하는 직업적 긍지 같은 것도 아니었고, 그저 그는 그런 데 만족할 수 있는 그릇일 따름이었을 터이다. 그런 태도가 요며칠, 일어난 소동들로 좀 이리저리 흔들리고 헷갈리었을 뿐이나.) 홍화에서 나고 자란 제가 홍화를 지지하는 것이 그렇게나 이상합니까? 각주님의 의견을 전달받았느냐 그렇잖느냐 물을 만큼?
야타는 잠시 고민했다.
혜는 저가 바란대로 충분히 혼란을 겪은 것 같았고,
다만 남은 결정이 하나 있어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내내 생각했던 것이다.
이대로 서각주와 혜의 아버지, 그러니까 훤의 뜻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제가 생각했던 방법으로. 그를 차근차근...
또는...
서각주는 혜를 대리로 참석시킬 것이라 답했다.
의심없이 장기말 노릇을 하는 자는 부리기 편하다. 이유나 꺼리를 만들어주지 않아도 알아서 몸을 바치는 것이다.
허나 그는 혜를 그저 장기말로 쓰지는 않을 모양이지.
교육방식이 참 혹독하십니다.
제게 맡기면 어찌될지도 모르시면서...
생각이 끊이지 않았으나 대답이 늦어지면 곤란했다.
"그대는 영민한 사람입니다. 다만 그 말 노릇에 너무 충실하느라, 스스로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게지요. 먼저 각주께서 구태여 그대를 대리로 보낸 이유가 무엇일지...는 생각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래, 딱 이 때쯤에 거슬러 올라갈까.
야타는 양 손을 펼쳐들었다.
"이전에, 제가 아주 어릴 적에. 키가 궁 담의 반이 조금 넘었을 적에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장기말의 역할을 해내는 자가. 뭐어...물론 공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만. 그는 병兵이라기보단 차車, 나 마馬에 가까웠지요. 들어보시겠습니까."
갑자기 말을 돌렸지만 그가 의심할 겨를은 없었을 것이다.
누가 할머니의 "옛날 옛날 한 옛날에, 호랑이 담배 물던 시절에," 라는 시작에 꼬투리를 단 적 있었던가.
그 작자는 느릿하게 웃으며 판을 엎을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