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부, 전부 알고 있었다. 당신은. 내 모든 사연과 비밀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감추고 아무것도 그 무엇도 알려주지 않다가 바로 이 밤에.
왜 이러는가. 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것인가.
"연, 홍화 사람."
"어찌되었건 저도 홍화의 사람입니다."
"금월은 당신의 조국이지요, 적 님. 그리고 내 조국은 홍화고요. 나는 홍화의 민초입니다. 그 대표로서 여기 왔습니다."
그는 홍화, 하현에서 나고 자랐다.
그 삶과 기억이 진실을...... 진실을 증명하지 않는다. 무엇도, 무엇도 이 삶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금월의 피를 받은 자가, 그것도 금월을 위해 움직이던 가문의 영식이.
부정하던 그 모든 말들이 진짜였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진짜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영웅담의 비장함을 동경하던 철없는 소년이 저버리고 나온 과거.
11년 전 그때, 느닷없이 왕실의 병사들이 문 안으로 들이닥치고 이적 모의의 죄목이 고해졌을 때. 사랑방을 뒤집어엎어 나온 증거들이 명명백백했을 때. 왜 아버지가 당당히 죽음을 택하지 않는지 그는 이해하지 못했었더라. 구차하게 연명하는 삶을 환멸했더라. 그래서 가족과 집안 자라온 나날들을 다 버렸던 그는,
'이 사람은 고아라서요.'
그토록 미워했던 것이, 그토록 부정했던 것이. 성은 버렸으나 불리우던 아명慧은 어찌할 수 없어 그대로 가지면서도 마땅찮아서 정보원의 통칭으로 불러 달라 하고 다녔다.
그리고 그 울리는 발음 우연인가 필연인가,
'저 홍화의 연燕이입니다.'
'성년이 되어 받았을 그 이름은 연煉.
하여 샤르의 옌.'
이것은 운명인가? 운명은 본래 이토록 기이한 것인가?
"―저는, 저하. 운명이라 해서 모든 것이 정해진 대로 흘러가기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태어나서 만나는, 고를 수 있는 가짓수는 무수하지만 그 반향들은 또 정해져 있기에 온전히 무수하지는 않은. 그것들 사이에서 한 사람이 고르면서 달려나가지는 삶의 길을 운명이라 해도 안 되겠습니까."
그렇게 말했었다. 그는 선택들을 했다. 남이 시키는 대로라고 한대도 그 시키는 대로 따르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지금껏 골라 온 그것들이 너무도 완전히 다른 방향들에서 그를 치고 찌르고 꿰뚫는다. 그래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어디로 어디로 달리어 나가는가. 어느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이 생의 이야기는 내몰리는가.
그의 집은 홍화 성안의 한주화각 건물 뒤에 딸려 있는 조그만 방이었다.
거기서 안뜰에 산수유나무를 키웠고 길목의 수양벚꽃을 좋아했다. 작은 세계의 거창하지 않은 그것들을 만들어 준 이는,
팔 년 전, 길거리에서 굶고 있던 그를 처음 보고서 대뜸 거두어들이겠다 했던 사람.
유일한 은인이자 신뢰하고 의지하던 사람, 마치 그에게 대부와도 같았던 사람.
휘청휘청 팔을 저으며 걷는다. 어두운 밤 하늘을 우러러 보고 허공에다가 묻는다.
"이게 다 뭐란 말입니까, 각주님."
"예?"
"다, 이것이 다 무엇입니까?"
그 각주님이 저의 아버지와 함께 이 모든 것을 안배하고 있었다 한다. 그가 집을 나온 것을 알고 행방을 수소문하여, 기억 속의 그 주막에 일부러 들러, 지금까지 곁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도록 모른 채 따르도록.
이번, 대표단에 참가하라 했던 지령 그 열흘도 더 전에 금월로 편지를 보냈다고 했다.
담연 혜라는 이름이 적힌.
오래 전 끊겼던 샤르의 표식을 가진.
그리하여 이 가의 적이 저를 찾아와 증거로서 들이밀며 따지었던 그 편지가 다 진실이었으니.
살아왔던 삶 믿었던 것 세상 전부가 송두리째 뒤집어진다.
무엇도 제대로 생각하거나 따질 수가 없다.
당신이 바란 것이 이것이었겠지. 내가 혼란에 빠져서 서 있기조차 힘들도록 만드는 것. 그렇다면 아주 성공하였습니다. 야타 님. 정말로 정신을 잃을 것 같거든요. 당장 누워 버려도 안 이상하겠습니다. 실의 마지막을 잡고 있는 손과 웃는 얼굴인가. 참으로 그러했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해서, 그저 들려 주는 것만으로 딛고 서 있던 땅은 대번에 위태로운 나무판자 끝 같은 것이 되고 말았다.
이 낯선 땅 위에서.
이 낯선 전란에서.
생전 본 적 없던 낯선 이것들이 저의 뿌리라 한다.
이 나무는 어디서 비롯하였는가? 바람보다는 땅에 붙박인 나무, 버들가지 같으나 실은 굳센 소나무가 되고 싶어하였던,
혜,
아니 연이,
샤르의 옌?
어떤 나라도 영원한 적국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려 한 겁니다.
발 딛은 곳이 산이라면 눈길은 바다를 향하고 있는 것.
각주께서 구태여 그대를 대리로 보낸 이유가 무엇일지.
그대는 누구의 의지로 홍화를 지지하고 있습니까?
들었던 말들은 이제서야 아, 하며 머릿속에서 그 조각을 맞추고 진실을 드러낸다.
막, 살아 오던 기억 전체가 부서져 내린 사람에게 요구하기에는 지나치게 이르고 잔인한 것들이다.
스스로의 정체도 확신하지 못하는 그는 누구의 의지로 무엇을 지지해야 하나?
이 생은 어디부터 잘못되어 있던 것인가?